← 도시질문
CQ.003 · 연재 중

대중에게 '관계인구'를 팔 수 있나

2026-10-21

구독도시 사업계획서에는 고객이 둘 있었다. 지자체와 구독자. 그런데 한 사람을 두 개의 이름으로 불렀다. 지자체에 내는 문서에서 그는 ’관계인구’였고, 랜딩페이지에서는 ’또 다른 일상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구독도시 랜딩페이지. "도시를 구독한다는 것, 또 다른 일상을 경험하는 일"
구독도시 랜딩페이지 · 실제 페이지 보기 ↗

처음엔 번역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같은 것을 듣는 사람에 맞춰 다르게 말하는 것뿐이라고.

지금 보면 번역이 아니었다. 나는 두 고객에게 서로 다른 것을 팔고 있었다.

1 — 행정은 관계를 센다

관계인구는 정책의 언어다. 지역에 거주하지 않더라도 방문하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사람들. 이들을 지역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바라보는 개념이다.

하지만 정책이 되면 관계도 측정해야 한다. 행정에서 사용하는 ’생활인구’는 실제 거주 여부뿐 아니라 일정 시간 지역에 머무른 사람까지 포괄한다. 관계인구와 생활인구는 다른 개념이지만, 지역과 연결된 사람들을 정책의 성과로 파악하려는 시선에서는 맞닿아 있다.

그래서 내가 지자체에 팔려고 했던 것도 결국 숫자였다. 재방문율, 지역 소비, 방문자의 특성, 방문에서 체류로 이어지는 변화. 계획서에 들어갈 문장은 이런 식이었다.

“구독자 20명 중 12명이 3개월 안에 다시 방문했고, 70%가 수도권 20~30대다.”

물론 실제로 확보한 성과가 아니라 사업계획서에서 기대했던 데이터의 모습이었다.

발주처에서 일할 때 나도 그런 문서를 만들었다. 전년도 방문객이 적었던 사업은 몇 명만 늘어도 높은 증가율을 만들 수 있다. 보고서에는 그 증가율이 성과로 기록된다. 실제로 지역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와 문서에 기록되는 성과 사이에는 때로 거리가 있다.

그렇다고 숫자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행정은 한정된 예산을 설명해야 하고, 사업의 지속 여부를 판단할 근거도 필요하다. 문제는 그 숫자가 무엇을 설명하고 있는가다.

나는 지역과 관계를 맺는 사람을 늘리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관계가 늘어났다는 것을 증명할 숫자가 필요했던 걸까.

2 — 대중은 세어지고 싶지 않다

반대편에서 나에게 물었다. 나는 왜 속초에 자주 가는가.

아는 사람이 있어서도 아니고, 지역에 기여하고 있다는 감각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그냥 쉬고 싶어서였다. 바다를 보고, 익숙한 거리를 걷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대중에게 팔 수 있는 문장도 거기서 나왔다.

“다른 도시에 내 별장이 생긴다.”

주말 숙박비가 부담스러운 사람에게,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는 집이 다른 도시에 있다는 것. 이 문장에는 관계도, 정착도, 지역 기여도 없다. 내가 원했던 건 부담 없이 다른 도시에 머물 수 있는 선택지였다.

물론 누군가는 지역과 관계를 맺고 싶어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마음이 모든 방문의 출발점은 아니다. 왜 내가 어느 지역을 방문하는 일이 반드시 그 지역에 도움이 되어야 할까. 나는 그냥 가서 있고 싶을 뿐인데.

여기서 두 고객의 욕구가 갈라졌다. 지자체는 방문이 관계로, 관계가 더 지속적인 체류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반면 방문자는 반드시 무언가로 전환될 필요가 없다. 어느 도시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곳에 정착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여러 번 방문한다고 해서 지역 활동에 참여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행정은 관계의 확대를 기대했지만, 대중은 관계를 선택하지 않을 자유도 필요했다. 이것은 같은 내용을 다르게 표현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서로 다른 목적의 문제였다.

3 — 두 언어를 동시에 말하면

구독도시의 수익 구조는 이랬다. 구독료는 진입로이고, 핵심 매출은 지자체에 제공하는 관계인구 데이터. 구독자는 고객이면서 동시에 사업 성과를 만들어 내는 데이터의 출처였다.

구독도시 앱의 결과 화면. 나의 생활 유형과 나와 맞는 도시

랜딩페이지와 사업계획서를 나란히 놓으면 그 구조가 그대로 보인다. 한쪽에서는 ’또 다른 일상’을 팔고, 다른 쪽에서는 ’당신의 재방문율’을 판다.

같은 사람을 두고.

하지만 사업모델은 어느 쪽에서도 충분히 설득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지자체는 물을 것이다. “그래서 구독자가 몇 명인데요?” 구독자는 물을 것이다. “그래서 얼마에, 어디서 잘 수 있는데요?”

나는 어느 질문에도 답할 수 없었다.

구독자가 없으면 데이터가 없고, 데이터가 없으면 지자체를 설득할 수 없었다. 지자체와 지역의 협력이 없다면 안정적으로 제공할 공간도 확보하기 어려웠다. 고객을 확보해야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데, 사업을 시작해야 고객에게 제공할 가치가 만들어지는 구조였다.

문제는 고객이 두 종류라는 사실 자체가 아니었다.

한쪽 고객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다른 쪽 고객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충분히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

나는 관계를 사업의 결과로 제시했지만, 정작 사람들이 왜 그 관계를 원해야 하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구독도시를 설계할 때 나는 관계인구가 얼마나 늘어날 수 있을지부터 계산했다. 하지만 관계가 만들어지는 이유, 그 관계를 사람들이 왜 지속하려 하는지는 충분히 묻지 않았다. 사람들이 지역을 찾을 이유가 먼저였는데, 나는 그 사람들이 남길 숫자부터 설계했던 셈이다.

관계인구는 대중에게 그대로 팔 수 있는 상품명이 아니다. 사람들이 구매하는 것은 숙박일 수도, 경험일 수도, 누군가와 함께하는 시간일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관계가 생길 수도 있고,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행정은 관계를 세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관계를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어쩌면 순서가 반대였는지도 모른다.

다른 도시질문
CQ.001
분석을 세 번 해도 결론이 같으면
CQ.002
빈틈은 기회다? 그건 바로 무덤이다

이 질문과 연결된 프로젝트를 함께 고민하고 싶다면

물까치에 연락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