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 번의 시장 분석이 전부 같은 결론으로 수렴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중 첫 번째, 경쟁사 분석의 결론은 이랬다. “관계인구 경험 설계 플랫폼은 아무도 안 하고 있다. 빈틈이다.”
빈틈. 기획자에게 이보다 달콤한 단어가 있을까. 시장에 플레이어가 없다는 건, 내가 첫 주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경쟁 없이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 적어도 그때는 그렇게 읽었다.
그런데 시장의 빈자리에는 두 종류가 있다.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기회와, 모두가 보고도 들어가지 않은 무덤. 구독도시가 찾은 빈틈은 후자였다. 그걸 알게 된 건 구독도시를 실패하고 나서다. 이 글은 그 실패를 들여다보고 나서야 이해한 것들에 대한 기록이다.
구독도시의 경쟁사 분석을 할 때, 나는 시장의 플레이어를 전부 펼쳐놓았다. 그런데 펼쳐놓을수록 이상한 확신이 생겼다. 이 회사들은 전부 “공간”을 다루고 있었고, “사람과 도시의 관계”를 다루는 곳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자요. 제주에서 빈집을 무상으로 빌려 리모델링한 뒤 숙박을 운영한다. 2015년 설립, 7년이 지난 시점에 제주 12채. 2019년에는 농어촌정비법에 걸려 1년 반 영업정지, 직원 절반 해고. 숙박 사업자이니까 규제에 부딪힌 거다 — 구독도시는 숙박을 안 하니까 이 리스크가 없다. 그렇게 정리했다.
블랭크(유휴하우스). 빈집을 리모델링해서 장기 임대한다. 속초에만 3곳을 운영하고 있었다 — 구독도시의 파일럿 도시와 정확히 겹쳤다. 2024년 TIPS에 선정되고 프리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미 결정한 사람”을 받는 거고, 구독도시는 “아직 결정하지 않은 사람”을 다루니까 보완 관계라고 봤다.
클리(마이세컨플레이스). 단독주택 공동소유 모델. 1구좌에 5~6천만 원. 업력 7.6년에 프리A 단계, 직원 6명, 전월 대비 14% 감소. 시장 형성이 느리다는 신호였다. 그런데 그 신호를 나는 “소유를 건드리는 모델이 무거운 거다, 구독도시는 소유 없이 경험만이니 다르다”라고 해석했다.
분석 보고서의 종합란에 내가 직접 그린 포지셔닝 맵이 있다.

위쪽에 다자요, 블랭크, 클리가 “공간을 직접 다룬다”로 묶여 있고, 아래쪽에 구독도시가 “사람을 다룬다”로 홀로 서 있다. 경쟁사를 분석했는데 직접 경쟁자가 없다 — 그 지도를 그리면서 나는 흥분했다. “아무도 안 하고 있어. 이건 우리 자리야.”
지금 보면, 그 지도는 빈틈의 증거가 아니라 경고였다.
빈틈이 기회가 아니라 무덤인 경우, 보통 세 가지 조건 중 하나 이상에 해당한다. 구독도시의 빈틈은 세 가지를 전부 충족하고 있었다. 그리고 더 나쁜 건, 경쟁사 분석 보고서 안에 그 근거가 이미 적혀 있었다는 점이다.
행동이 없다. 관계인구, 두 지역 살이 — 학술적으로 정의된 개념이다. 그런데 이 정의에 해당하는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는 사람이 실제로 얼마나 되는가. 한달살기를 한다. 좋았다. 다음 달에 같은 도시로 다시 간다? 거의 없다. 다른 도시로 간다? 그것도 드물다. 대부분은 한 번 가고, 좋은 기억으로 남기고, 끝이다.
경쟁사들의 궤적이 이걸 말해주고 있었다. 다자요, 7년 만에 제주 12채. 클리, 7.6년 만에 직원 6명. 이 회사들이 느리게 성장한 건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시장 자체가 작았기 때문이다. “반복적으로 지방 도시에 체류하는 삶”을 구매하는 사람의 절대 수가 사업을 떠받칠 만큼 크지 않았다. 장소에 상관없이 일할 수 있는 디지털 노마드라면 여러 도시를 월별로 생활할 수 있겠지만, 그런 생활자의 비율은 사업 모델을 세울 만큼 높지 않다.
경쟁사 분석에서 나는 이 숫자들을 다 적어놓고, “구독도시는 데이터 모델이니까 스케일링이 다르다”로 넘겼다. 시장의 크기 자체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돈이 안 된다. 구독도시의 수익 모델은 두 갈래였다. B2C로는 월 1.5만 원 구독, B2G로는 사용자 행동 데이터를 지자체에 판매. 경쟁사 분석 보고서의 리스크 평가란에 내가 직접 이렇게 적어놨다. “데이터만으로 지자체가 돈을 낼까? — 심각도: 높음.”
심각도가 높다고 스스로 쓰고는, 대응란에 “MVP 100명 행동 로그로 실증 필요”라는 한 줄을 적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가장 짧은 답을 달았다. 지금 보면 이건 분석이 아니라, 그냥 미뤄둔 것이다.
한편 고향사랑기부제를 통하면 10만 원 기부에 세액공제 + 답례품으로 실질 부담이 절반 이하다. 지자체 체류형 관광 프로그램은 보조금이 붙어 무료이거나 극히 저렴하다. 월 1.5만 원의 구독이 실질 무료인 공공 프로그램을 넘어서는 가치를 제공해야 했는데, 그 가치가 무엇인지는 정의되지 않았다. 매칭 테스트와 큐레이션이 차이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 그건 기획자의 확신이지 사용자의 지갑이 아니었다.
구조가 막고 있다. 사람들이 서울을 떠나지 않는 이유는 도시 추천의 부재가 아니다. 직장, 학교, 의료, 문화 인프라 — 서울에 묶이는 조건들이 해결되지 않는 한, 아무리 좋은 큐레이션을 만들어도 사용자는 관광객으로 머문다. 지금 사는 도시의 편리함을 버리고 지방으로 옮기려면, 그것을 상쇄할 만한 조건이 있어야 한다. 그 단순한 사실을 미처 따져보지 않았다.
경쟁사 분석에서 유휴하우스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아직 결정하지 않은 사람을 끌어오는 건 구독도시의 역할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결정하지 않은 건 좋은 도구가 없어서가 아니라, 결정할 수 있는 조건이 안 돼서였다. 도시를 잘 매칭해주면 떠날 거라는 전제 자체가 틀렸다.
경쟁사 분석 보고서를 다시 펼쳐보면 이상한 장면이 보인다. 보고서의 왼쪽 열에는 위험 신호들이 빼곡하다. 다자요의 7년 12채, 클리의 축소, “데이터만으로 돈을 낼까”라는 자문, 공공 프로그램과의 가격 경쟁. 그런데 오른쪽 열에는 전부 “하지만 구독도시는 다르다”가 적혀 있다. 위협은 “없음” 또는 “낮음”이고, 기회는 문장이 길다.
이건 1편에서 말한 패턴의 반복이다. 비관은 인정하되 “리스크 요인”으로 분류하고, 낙관은 “기회”로 확대한다. 같은 데이터를 보고도, 그 데이터가 가리키는 방향이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면 해석을 비틀었다.
빈틈을 발견했을 때 기획자가 해야 하는 일은, 그 빈틈을 채울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그 빈틈이 왜 비어 있는지를 먼저 묻는 것이다. 경쟁사가 없는 시장은 블루오션일 수도 있고, 시장 자체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이 둘을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 “이 행동을 이미 하고 있는 사람이 충분히 있는가?”
나는 그 질문을 건너뛰었다. 빈자리를 발견한 순간, 이미 그 자리에 앉기로 마음먹은 상태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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